주류 경제학에서는 수많은 재화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존에는 경제적 가치와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것들도 돈으로 환산하여 논문을 쓰곤 한다. 예를 들면, 결혼, 교육, 윤리, 건강, 수명, 환경 등에 관한 문제에서 비용, 편익분석을 하여 어떠한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제시하는 식이다. 


  이런 대세를 반영하듯, 우리들도 삶이나 일상 생활의 많은 선택에 있어서 선택지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직장을 선택할지 결정할 때 연봉이 주요 고려 요인이 된다. 살 곳을 정할 때도, 먹을 음식을 정할 때도 가격이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된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방의 직업을 고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편하지만, 그가 벌어들일 수입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고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활동이나 우리가 기울이는 노력의 최종에는 역시 돈이 있는 것 같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과 비료를 주고 농작물을 잘 가꾸어서 시장에 내다 팔면 최종적으로 돈을 받는다. 의사 환자를 면담하고 진찰하고 처방하고 나서 결국에는 돈을 받는다. 택시 기사도 목적지까지 승객을 데려다주고는 돈을 받는다. 식당에서는 재료를 구입하고, 씻고 손질하고 요리하고 서빙까지 하고 나서 결국 손님에게 돈을 받는다. 항상 마지막에는 돈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이 목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일단은 돈이 있어야 생존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 천박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돈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내가 만약 복권 1등에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할까? 당첨금을 흥청망청 써버리기보다는 적당한 곳에 투자를 할 것이다. 아마도 빌딩같은 부동산에 투자하여 수십년 간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남은 평생동안 매달 많은 돈이 내 통장에 들어온다면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나는 어떤 기분일까? 그리고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가고 싶었던 곳으로 여행을 갈 것이다. 세계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도 만나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을 많이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갖고 싶었던 것들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브랜드, 좋아하는 물건들을 많이 살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진귀하고 좋은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이상 원치 않는 노동을 하느라 인생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이제부터 인생은 나의 것이다. 

 

  이렇듯 많은 돈은 인생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이러한 것들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더 생각해 보자. "진귀하고 좋은 음식"이란 무엇일까?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이용해서 최적의 조리 방법을 이용해 최상의 맛을 낸 요리를 뜻한다. 당연히 좋지 않은 식재료를 쓰지 않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했기 때문에 몸에도 좋다. 이 요리는 나의 입맛에도 맞고, 나의 몸에도 유익하다. 이 요리는 비싼 돈을 지불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만들어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즉, 이 요리는 나를 위한 배려로 가득 차있다.  


  좋은 옷은 나를 돋보이게 만든다. 내 몸에도 잘 맞는다. 너무나 멋진 옷인데, 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편안하기까지 하다. 이렇듯 좋은 옷에는 나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넘친다. '이런 옷을 만든 사람은 입는 사람을 이만큼이나 생각해주는구나!' 나는 감탄할 것이다. 저렴한 옷은 그렇지 않다. 저렴한 옷은 나에게 '어느 수준에서 타협하라'고 권유한다. 옷이 주는 불편함을 적당히 감수하거나, 디자인이 100%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참고 입어야 한다. 


  여기 고급 자동차 한 대가 있다. 좋은 차다. 이 좋다는 의미는 결국 무엇일까? 엔진 성능 등 자동차의 본질적인 주행 성능이 뛰어나고 안전하다. 외부 디자인도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하고 내부 UI는 사용자를 생각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자동차로부터 느끼는 좋은 감정은 모두 사용자에 대한 생산자의 배려에서 나온 것들이다. 


  좋은 집, 좋은 자동차, 좋은 여행지까지, '좋은 상품'안에는 사용자에 대한 더 나은 배려와 더 많은 관심이 제품의 질과 디자인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좋은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불편해 하는지, 최선을 다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긴 시간을 들여 개선시켜 나가면서 상품을 만든다. 이런 물건들에서 우리는 사용자에 대한 생산자의 배려심을 느낀다. 좋지 않은 상품은 그렇지 않다. 좋지 않은 상품은 사용자에 배려보다는 원가절감이나 최종적인 수익률을 고려한다. 사용자는 중요성에서 후순위로 밀리게 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좋지 않은 물건을 쓸 때 나는 그 물건에서 생산자가 쏟아 부은  관심과 배려를 느끼기 어렵다. 


  현대 사회에서 돈은 '관심과 배려'라는 최종적 화폐로 전환될 수 있다. 많은 재화와 서비스가 돈으로 전환된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돈은 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자원의 양을 표시하는 척도이고, 이 자원은 곧 타인의 관심과 배려를 의미한다. 저 음식이 5천원짜리라면, 저 음식에는 5천원어치의 관심과 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저 요리가 10만원 짜리라면 저기에는 10만원어치의 관심과 배려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절대적 환산이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상품 가격에는 거품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명품 브랜드들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하곤 한다.  또한 우리는 저렴하면서도 좋은 물건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상품의 좋음과 가격은 비례한다. 소비자의 건강을 더 생각하는 유기농산물은 일반 농산물보다 비싸다. 운전자와 승객의 안전을 더 생각해서 만든 자동차는 그렇지 않은 자동차보다 일반적으로 더 비싸다. 안전하고 살기 편한 집은 그렇지 않은 집보다 더 비싸다. 


  어쩌면 우리는 상품을 구입해서 사용할 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당신은 다른 청소기보다 두 배나 비싼 청소기를 구매했다. 이 경우 당신이 이 청소기에서 기대하는 바는 뭘까? 당신은 이 청소기가 다른 보통 청소기보다 성능도 좋고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내구성도 더 좋기를 바란다. 이 청소기 생산자의 수고와 아이디어를 통해서 나의 생활이 더 편리하고 윤택해지기를 바란다. 우리가 두 배의 돈을 지불하면서 이 청소기를 구입한다는 것은다른 청소기의 생산자보다 이 청소기의 생산자가 사용자인 나를 두 배 이상 더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렇게 우리는 청소기를 매개로 생산자와 만나는 것이다. 만약 청소기의 성능이나 편리성이 기대에 못 미친다면, 우리는 화가 날 것이다. 나는 상대방을 섭섭하지 않게 대했는데 상대방이 나를 이런 식으로 천대했다거나 속였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잠시 모든 상품과 서비스가 투명해졌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더이상 자동차와 음식과 집과 옷을 볼 수가 없다. 이것들은 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돈'과 사람들의 행동, 특히,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여기 한 갑부가 있다. 당신은 그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자동차를 타고, 어떤 음식을 먹는지 볼 수가 없다. 다만 그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배려를 받게 되는 것을 본다. 사람들은 그를 다른 사람들-특히 가난한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한다.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먹고 싶어하고, 무엇을 입고 싶어하는지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식당, 그가 입을 옷을 만드는 옷가게는 마치 귀한 사람이 먹을 음식과 옷을 만드는 것처럼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자신들의 상품을 준비한다. 그가 살 집을 짓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내가 행복하고 편안한 일상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가 아프면 더 실력있는 의사와 정성스러운 간호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살핀다. 


  이제 우리는 하나의 함수를 얻는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라는 이해하기 어렵고 상충하는 주장들로 가득한 복잡한 함수다. 이 함수의 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이 함수의 투입물과 산출물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이 함수의 투입구에 돈을 넣으면 배출구에서는 상품에 응축된 형태로서 '나에 대한 타인의 관심과 배려'가 나온다. 투입구에 더 많은 돈을 넣을수록 배출구에서는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나온다. 


  결국 모든 문제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마치 모든 경제현상이 돈으로 환산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사회과학, 이론, 윤리, 이념, 세계관은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라는 최종화폐로 귀결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돈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회인 것 같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즉, 돈으로 '타인의 관심과 배려'를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다. 이것이 부당한지 그렇지 않은지, 부당하다면 얼마만큼 부당한지, 그리고 어느 선까지만 허용 될 수 있는지는 차차 생각해보기로 하자. 다만 여기서 나는, 만약 당신이 자본주의의 이러한 규칙에 저항하고 싶어 하거나 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같이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나? 돈과 무관하게 사람을 대하면 된다. 돈이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똑같은 크기의 관심과 배려를 기울이면 된다. 즉,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는 않다.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극진히 대접하는데, 당신만 나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겠는가? 혹은,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저 가난한 사람이 마주한 무관심과 천대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당신 홀로 그에게 다가가 관심을 기울이고 그를 극진히 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왕따'가 될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감히 이렇게 행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당신이 충분히 부유하지 않아서, '왕따'가 곧 가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또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이 벽은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꽤나 견고해 보이는 벽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닌 사회성은 생존에 필수적임과 동시에 그들의 행동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때문에 윤리나 제도, 철학 등 사람에 관한 모든 논의들은 인간의 사회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잘 모르겠다. 일단 혼자보다는 여럿이 유리할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동료와 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서로 이야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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