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준 · 황레나 지음,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예담, 2013. 




들어가며


  북유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북유럽이 우리에게 더 큰 열등감과 좌절을 안기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 사회는 잘 갖추어진 복지제도와 사회 기반시설들, 높은 소득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삶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비인간적인, 그리고 고통스럽고 잔인한 현재를 감내해야만 하는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북유럽을 이상향으로만 여기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논의하기를 쉽게 포기해 버릴까 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바람직한 사회 상으로서의 북유럽에 관해 이야기 할 때, 그 실천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도 이러한 관점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그 '실천 방법'이 어떠해야 하는지, 혹은 '실천 방법'을 마련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상당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것은 ‘평등’ 관한 인상이었. 이 책에서의 평등은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인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진공같은 ‘평등’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일상에서 평등이 어떻게 실현되고 드러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인 황선준과 황레나는 부부다. 황레나는 스웨덴 사람이다. 이 부부는 스웨덴에서 자녀 셋을 키우면서 살아왔다. 이 책은 스웨덴에서 겪은 그들의 육아와 교육에 관한 이야기이다. 요즈음은 북유럽 관련 책들이 워낙 많아서, 이 책도 그런 상투적인 북유럽 관련 책들 중의 하나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직접 현지에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구체성과 현실성이 있는 편이다. 




1. 사회의 분위기


  이들 부부는 처음에는 한국에서 살 작정이었다. 이들은 다섯 살, 세 살, 한 살인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서 직장도 알아보고, 시댁 부모님께도 한국에 돌아와 살 것이라고 약속했다. 


  스웨덴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다시 비행기를 타던 날, 아버지는 “이제 돌아오제? 분명히 돌아오는 거제?”라고 거듭 물었고 아내는 이미 수차례 대답했던 것처럼 “에, 그럼요”라고 되풀이했다. 그런데 스웨덴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는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 수 없다고 선언했다. …… 항의하는 나에게 아내는 자신이 왜 그러한 결정을 내렸는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당신, 동생 집에 갔을 때 차를 어디에 세웠는지 기억나요?”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아파트 앞 왼쪽에 세워놓지 않았어?”

 

  나는 아내의 뜸금없는 질문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그 아파트에 아이들 놀이터는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요?”

  “아파트 뒤쪽에 있었지.”

  “그러면 그때 햇빛이 어디를 비추고 있었나요?”


  나는 아내가 무슨 얘기를 할지 이내 직감하며 얼버무렸다. 그러자 아내는 우리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은 아파트의 양지바른 곳이었고, 아이들 놀이터는 아파트 뒤쪽 응달에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아내가 점심을 먹은 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을 때 너무 추워서 10분도 채 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추운 1월인 데다 햇볕까지 들지 않았으니 얼마나 추웠을지 짐작이 되었다.


  아내는 그것만 보고도 한국에서 아이들과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아버지들이 차를 주차하는 공간은 겨울에도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인데 반해 아이들 놀이터는 춥고 그늘진 곳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 아파트를 설계한 사람은 분명 남자였을 것이고, 그렇게 아파트를 설계해도 누구 하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며 살아가겠어요?”라고 했다. 


  또 한국에 갔을 때 내 조카들이 학원에 가고 과외를 받느라 우리 애들과 놀지도 못한 점을 꼬집었다. 아내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나도 한국에서 스웨덴에서처럼 아내와 평등하게 살면서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 다그치지 않으며 키울 자신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스웨덴에서 살아보자고 했다. 한국의 부모님께, 그리고 직장을 마련해준 선배에게 편지를 보내 돌아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8~9쪽)  


  가치관은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긴다. 한 사람의 가치관도 그러하거니와 한 사회의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일화를 굳이 남녀평등의 의미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그 아파트의 설계자는 충분히 여자였을 수도 있다. 쉽게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이 일화는 한국 사회의 가치관의 내용이 천박한 자본주의임을 보여준다. 천박하다는 것은 깊게 생각하기 싫어한다는 뜻이다.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아이들을 비롯한 사회적인 약자를 배려하기 위함이다. 천박하다는 것은 그렇게 깊게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놀이터의 위치에서 그런 배려 없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아무도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들 눈에는 당연하기 때문이다. 


  당연함. 당신은 당연함의 위력을 아는가? 당연하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 굳이 의심하거나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당연한 것들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당연함은 ‘변화’와는 상충된다. 그래서 우리를 억압하거나 차별하는 것들이 당연한 듯 여겨질수록 그것을 극복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 당연함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의 눈에는 당연하지가 않다.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당연함에는 금이 갈 수 있다. 


  위의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스웨덴과 한국의 사회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혹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 쪽은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가 생활화 되어 있다. 주변을 돌아보고, 약한 사람,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돕는다. 당연하다.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이고 사회성이다. 다른 한 쪽은 나의 경제적인 이득과 효율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 당연하다. 우리는 동물로서 일단은 생존 본능을 지닌 존재들 아니던가? 일단은 내가 먼저 살아남고 봐야한다. 나는 둘 중에 무엇이 더 당연한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어느 쪽이 더 진실된 것인지도 묻는다. 





2. 평등


  이 책을 통해서, 추상적인 평등이 아닌 실제 생활 속에서의 평등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를 볼 수 있다. 설거지 일화(55~56쪽)에서 스웨덴 사람들이 지닌 남녀평등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어디로 휴가를 갈지, 애완동물을 키울지 말지, 주말에 무엇을 할지 등 가정의 크고 작은 일들을 부모가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회의를 통해 온 가족이 함께 결정하는 모습(126~132쪽)도 인상적이다. 아이들이든, 여성이든,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식을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인식을 자신이 직접 겪는 남녀 관계나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바로 실천한다. 집단 간, 계층 간의 평등과 같은 사회 전체적인 평등이, 부부 간의 평등을 비롯한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평등과 결코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3. 평등과 서열화


  우리 모습을 깊이 되돌아보게 만드는 부분이다.


  성적표란 것을 이렇게 늦게, 중학생이 되어서야 줄 뿐만 아니라 성적에 따라 서열을 매기지도 않는다. 학생 자신의 성적은 알지만 학급에서, 학교에서 몇 등을 하는지 서열을 매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어느 시험에서 최고 성적인 MVG를 받아 왔다. 아내는 자랑스러원하며 아빠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아이의 성적표를 받아 든 나는 “몇 점 받아서 이 성적을 받은 거야? 만점 받았어?”라고 물었다. 이 질문을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자 나는 “그럼 너희 반에서 몇 명이나 이 성적을 받은 거야?”라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버럭 화를 내더니 “저렇게 좋은 성적을 받아 왔으면 칭찬해줘야지 왜 다른 애들과 비교해?”라며 질타했다. “아빠한테 다시는 성적표 보여주지 마!”라고도 했다. 


  스웨덴에서는 서열을 매기거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덕분에 아이들은 우리나라처럼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에게 비교당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려 들지 않는다. (158~159쪽)


  위 일화를 보면, 한국인, 그리고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서열’에 익숙한지를 알 수 있다. 뭐랄까, 우리는 순위를 매기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가 100점을 받아 왔는데, 같은 반에, 또는 전교에 100점 맞은 학생이 몇 명인지 알지 못하면 불안하다. 그런데 이러한 정서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병적이거나 이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왜 한국인은 서열을 확인하려고 하는 것일까? 몇 등인지를 알아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에 맞춰서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등이라면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 해나가면 된다. 중상위권이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하위권이면 지금까지의 방법을 바꾸거나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일단 집단 안에서의 나의 위치, 혹은 자녀의 위치를 알아야 마음이 놓인다. 그것은 지도 상에서의 좌표와 같은 것이다. 


  서열은 불평등이나 차별의 전제 조건이다. 서열이 없으면 차별대우를 하거나 불평등한 대우를 할 수 없다. 반대로, 불평등이나 차별대우를 할 필요가 없다면 서열 역시 필요가 없어진다. 내가 보기에 스웨덴 교육에서 석차가 필요 없는 이유는 별로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 같다. 반에서 일등을 하든, 꼴찌를 하든, 학교만 잘 졸업하면 별 문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누구나 먹고 사는 데에 별 문제가 없고, 설령 꼴찌로 졸업을 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인간답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굳이 각각의 학생들의 석차를 매기고 또 이를 확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될 뿐이다. 따라서, 사회에서 성인들 사이에 차별과 불평등이 없어야만 학교에서도 서열의 필요성이 사라진다. 반대로, 한국의 교육 현정에서 서열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인 불평등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표현일 수 있다. 


  스웨덴의 교사나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서열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은 어른들이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학교 성적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학교 성적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하면, 미소가 예쁜 아이,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 유머감각이 좋은 아이,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 등, 각각의 아이들의 각양 각색의 개성과 장점들이 사장된다. 


  인간은 개개인이 모두 다르다. 수억, 수십 억 명의 사람들이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성적은 한 인간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관점 중의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이 하나의 기준으로 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노래 잘 부르는 아이가 학교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주눅이 들거나 부모와 갈등을 겪게 된다면, 이는 그 아이가 겪지 않아도 될 불행을 겪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현장은,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엄청나게 폭력적이다. 이 폭력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한 인간으로서 그다지 존중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비인간적인, 그리고 아이들의 인간다움을 무시하고 이를 황폐화시키는 범죄 행위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 너무나 익숙하다.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다. 직장과 직업도 서열화되어 있다. 직장 안에서는 직급에 따라 위계가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서열화가 이루어져 있다. 경제력에 따라 삶의 질이 서열화되어 있다. 그렇다고 남녀간의 관계가 평등한가? 장애인에 대한 처우는? 우리는 무엇 하나 평등한 것이 없다. 


  이러한 위계와 서열이 동양 특유의 집단과 관계를 중시하는 정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족을 놓고 보자. 스웨덴의 평등하고 수평적인 가족 문화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수시로 대화하고 소통을 한다. 이 책의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그래서 스웨덴은 매우 가정 중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가족을 중시한다는 뜻은,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뜻이다. ‘평등’이 오히려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와 친화력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위계적인 가정 분위기, 예를 들어 가부장적인 가정 환경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소통은 어려워지고 관계는 소원해진다. 




4. 평등과 자신감


  우리 아이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어 본 지인들은 아이들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두 가지를 말했다. 당당하고 예의가 바르며 밝다는 것, 그리고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영어는 그렇다 쳐도 우리 아이들이 당당하고 예의가 바르며 밝다는 말에 나는 놀랐다. 하도 스스럼없이 어른들을 대해서 한국 사람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건방져 보이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는데, 평가는 그 반대였다.

지인들은 어떻게 교육했기에 아이들이 이토록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건 오히려 나 자신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우리 부부는 어른들을 만날 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친 기억이 없다. 집에서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하게 생활했기 때문이다. 아이들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옷들로 어질러져 있고 빨래감이 널브러져 있는 등 말을 잘 안 들어서 짜증 나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아이들이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을 만나면 어느 정도 태도가 바뀌긴 했다. 그런데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아이들에게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만나도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이야기했다. 먼저 질문을 하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끄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도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으며 환하게 웃었다. 


  스웨덴 학교에서도 특별히 그런 예절을 가르치지는 않는다. 한국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과목도 없다. 아마도 아이들을 가르친 건 스웨덴의 문화 그 자체였을 것이다. 아이들의 의견을 묻고 존중하며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문화 덕분이란 생각이 든다.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가능한 생활과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서 배운 게 틀림없다. 어른 앞에서는 무조건 눈을 내리깔고 묵묵히 있거나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얼굴 근육이 굳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예의가 아닌 무례에 가깝지 않을까. (153~154쪽)



  어떻게 해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까? 자신감은 내가 어떤 것을 의도하면서 어떤 행동이나 발언을 했는데, 그 의도했던 결과가 나타났을 때 느껴지는 감각인 것 같다. ‘나의 최초의 판단이나 인식이 옳았구나’ 하는 기분 좋은 감정이 바로 자신감이다. 실제 생활에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자신이 잘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매우 당연하다. ‘잘 하는 일’이란 자신이 의도한 대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의 발언이 받아들여져서 현실에 반영이 되는 것이다. 이 책 저자의 아이들은 가족 회의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언할 수 있었고, 그 의견은 타당하다면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러한 구체적인 경험들이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정 안에서의 평등과 상호존중이 활발한 의사소통의 기반이 되고, 이것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든다. 




6. 소통 –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


  스웨덴의 학교에서 왕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다. 


  스웨덴에서는 왕따나 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먼저 멘토 교사가 해당 학생들을 만나 대화를 한다. 사실상 이 대화의 단계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이 단계에서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는 성인 팀(전문 상담사와 학년별 대표 교사 한두 명을 포함해 약 여섯 명의 교직원으로 구성된 팀)으로 넘어간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성인 팀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차별, 왕따, 희롱, 폭력 문제를 전담할 때 이런 사회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근절시킬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성인 팀이 문제의 학생들과 대화를 한 뒤에도 해결이 안 될 정도로 복잡하거나 어려운 사안일 경우에는 전문 상담사에게 넘어간다. 전문 상담사의 선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최종적으로 교장에게 넘어간다. 또 어느 단계에서 해결되 되든 되지 않든,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차별, 왕따, 폭력 문제는 콤뮨(지방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 또 이 성인 팀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학생 팀이 있다. 각 학급을 대표하는 남녀 학생 두 명씩, 총 30명이 학생 팀을 이룬다. 이 두 팀은 서로 협력해 바람직한 학교 분위기의 조성을 위해 노력하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피며, 어던 대책을 강구할지도 논의한다. 


  여기서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신의 친구들이 안전하게 느끼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학생들이고, 교직원들 역시도 학생들이 얘기를 해줘야 비로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의 모든 교직원들은 학생들이 스스럼없이 학교에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관점, 의견과 제안이 학교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얘기해봤자 해결되지 않을 문제라면 굳이 교직원들에게 털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의견이 학교를 변화시킨다고 느낄 때에야 비로소 학생들은 문제를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문제 해결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학교 전반에 걸쳐 민주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왕따와 폭력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전교생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 역시 학생들이다. 특히 모범이 되고 리더십 있는 학생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30명이나 되는 학생 팀의 학생들이 모범을 보이고, 다른 학생을 놀리거나 싸우지 않고, 모든 학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이것이 학교 전체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 학생들이 왕따나 폭력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각 반응해 그런 행동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면 왕따나 폭력에 엉겁결에 가담한 학생이나 방관하는 학생의 수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 학생이나 그룹의 세력이 번지지 않고 오히려 고립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계속해서 왕따나 폭력 문제를 일으키기 어렵다. 가해 학생이 교사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반성의 의사를 표시하더라도 정말 그 말을 지키는지는 학교생활을 함께하는 다른 학생들이 가장 잘 안다. 따라서 학생 팀을 꾸려 왕따와 폭력 근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일은 평화롭고 학생 친화적인 하교 분위기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학급회와 학생회 조직이 있지만 왕따와 폭력 근절을 위한 학생 팀 조직을 따로 두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각각의 조직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의 관심 분야와 역할이 서로 다를뿐더러,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두 조직에서 동시에 활동하려면 학업에 지장을 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학교는 폭력과 왕따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대처 방법이 학생들과 대화하며 언제나 주의 깊게 지켜보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피해 학생과 대화를 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 학생을 돕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해 학생과 대화를 하는 것은 차별, 왕따, 폭력과 같은 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다. 


  (……) 물론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에게도 알리고 학생들 사이에 좋은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협조를 구해야 한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고, 어떤 조치를 취했으며, 나쁜 행동이 개선되었는지 여부를 해당 학생들뿐 아니라 교직원 모두에게도 분명히 알린다. 학교는 문제 하나하나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웨덴 학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87~291쪽)



  소통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들이 인상적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모든 문제는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학생들의 의견을 학교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는 생각도 인상적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통을 해야 한고, 소통을 위해서는 그 집단이나 단체의 운영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는 소통의 문제이고, 소통을 위해서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야기 해봤자 소용없는 일에는 입을 다물어 버리기 때문이다. 소통에 관한 문제는 추후에 따로 다루기로 하자. 




7. 생명의 연약함,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


  사라 외에도 전문 상담사인 아내에게 찾아온 학생들은 많았다. 사실 내 눈에 비친 아내는 내 월급의 겨우 절반 정도를 받으면서 언제나 남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직업을 바꿔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해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들을 내가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어요? 이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데······"라며 말끝을 흐리곤 했다. 

  그래도 나는 아내의 직업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그런데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아내는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서 받았다며 조그만 화분을 가지고 왔다. 그 조그만 화분 속에는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아내가 상담한 학생들의 부모들이 쓴 카드였다.

  "당신이 우리 딸을 구했습니다."

  "당신이 우리 아들을 죽음에서 구해주었습니다." (280쪽)


  나는 "죽음에서 구해주었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느낀다. 




8.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엿볼 수 있었다. 사회뿐만 아니라 가정과 학교에서의 민주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모습들이 우리의 삶, 우리의 생활과 너무 거리가 있게 느껴진다면 우리 사회가 아직 민주화가 덜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생활 속의 평등과 민주화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지금부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인식 하에, 언제, 어디서는 당당하고 떳떳해질 수 있겠는가? 연장자나 상사 앞에서 주눅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높은 지위에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동등하게 다른 사람을 대하고, 또 자신을 동등하게 대해 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겠는가? 배우자에게,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이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사무실에서 동료에게, 상사에게 이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당신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 자신이 해도 되는 일을 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혹은 다른 사람이 그런 일을 시키는 것을 저지시킬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평소에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는 성격이 아니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자기 생각과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가정 환경이 아니었다면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과 시도를 해본다면 평등한 사회는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한국에는 이렇게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와는 이질적인 수많은 관습, 시스템, 장치, 분위기들이 있다. 우리는 언어부터 서양과 다르다. 존댓말이 있고, 반말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예절에 따라서 나이, 때로는 지위에 따라 행동과 호칭을 달리 해야 한다. 존댓말을 쓰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당한 개인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나오며 


  이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자연스러운 삶, 이 책에서 보여주는 삶은 마치,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균형 잡힌 생활, 균형 잡힌 삶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지 않고 사랑한다는 뜻인 것 같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들은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이 모든 것들이 근무시간이 짧아서 가능한 것은 아닌지? 





(최종수정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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